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런 점은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동일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어떤 자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까? 여기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세상 불신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에수님을 믿는다 해도 그들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떠나간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들이 갈 곳은 한 곳밖에는 없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13장 41~42절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불법을 행하면 지옥에 가게 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여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 영혼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곳에 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법을 전하는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부자가 지옥에서 뒤늦게 후회하며 자기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 증거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답변하셨습니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라'라고 하셨는데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무엇을 들으라는 것이겠습니까? 그들이 전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우리도 장래 이 예화에 나오는 부자처럼 지옥에서 고통받지 않으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법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법을 소중히 지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법의 중요성

에스겔 18장 21절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법과 율례를 지키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나요? 하나님의 율레와 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면 정녕 살고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어서 하나님의 법을 지킨다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입니다. 반대로 이런 생명의 법을 버린 자들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볼까요?

에스겔 20장 24~25절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또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을 버린 자들에게 어떤 규례를 준다고 하였습니까?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레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예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규례를 버린 자들은 살지 못할 규례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율법이 폐지되었으므로 어떤 율법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서도 우상 숭배하는 율법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규례인 안식일을 버린 자들이 아무것도 안 지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태양신 숭배에서 유래된 일요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월절을 버린 자들은 아무것도 안 지킵니까? 태양신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살 수 있는 규례는 버리고 죽게 하는 우상의 규례는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규례를 버린 자들에게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사람이 만든 불법인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 대해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말씀도 살펴볼까요~

마태복음 15장 7~9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게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사람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였습니다. 헛되이 경배한다는 것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사람의 계명을 지켜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요일이나 성탄절 같은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도 스스로는 구원받았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자기 생각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인정해주셔야지 진짜 구원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악한 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서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사야서도 확인해봅시다.

이사야 29장 13~14절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헤작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아무리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 해도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무엇이 없어진다고 하셨나요? 지혜와 총명입니다. 오늘날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교회에도 나름대로 세상적으로 똑똑한 사람도 있고 신학박사도 있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지한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주로 그들의 지혜와 총명을 가리웠는데 어떻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사람의 계명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행세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요한일서 2장 3~6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최소한 하나님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고사하고 아는 것으로도 인정해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은 소중히 여기시고,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미워하시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면 그가 정말로 하나님께 대해서 무엇을 아는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아노라 하는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없는 또 다른 하나님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은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만 아노라고 하는 것은 실상 하나님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노라고 거짓말하는 가증한 행위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죄는 불법 즉,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하셨고, 죄를 짓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일 3:4, 8).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것이지 마귀에게 속한 악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 구원받을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게명을 지킨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계 14:12).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생각의 결과

 

그럼에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의 계명 좀 안 지킨다고 정말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각의 결과를 성경에서 확인해볼까요?

예레미야 6장 19절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드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재앙 받는 것이 생각의 결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경홀히 여기는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 가야 하겠습니다. 장차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도 우리의 생각의 결과며 재앙을 받는 것도 우리들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구원이나 천국이 허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고들에게만 천국이 약속되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허락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올바른 믿음으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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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네번째 계명입니다.

 

우리가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할 안식일은 언제일까요~

또한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할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1. 안식일의 유래와 하나님의 명령

 

창세기 2장 1절~3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쩨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 몇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습니까? 한주간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입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십계명 중에 넷째 계명으로 정해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8절~11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제칠일을 특별히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라는 계명을 정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키라 명하신 안식일~하나님의 명령

성경에서 안식일은 100회 이상이나 언급된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2. 안식일은 무슨 요일인가?

 

그렇다면 안식일 곧 한 주의 일곱째 날은 무슨 요일일까요?

국어사전

일요일- 칠요일의 첫째 날

토요일- 일요일로부터 일곱째날 

성경

마가복음 16장 9절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공동번역 성경

마가복음 16장 9절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예수님께서 언제 부활하셨습니까? 안식후 첫날입니다. 즉, 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는 안식 후 첫날이 요즘 요일 제도로 이해하기 쉽독록 일요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 후 첫날은 오늘날 요일 제도로 보면 일요일입니다.

안식후 첫날은 안식일 다음날이잖아요~안식일 다음날이 일요일이면 그 전날인 안식일은 당연 토요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세상 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일요일은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 후 첫날 즉, 안식일 다음날일 뿐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날 일요일을 지키고 있는 교회에서는 성경의 안식일이 무슨 요일이라고 할까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교부들의 신앙, 108쪽)

 

이와 같이 여러 증거들이 모두 성경의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표징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일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알아볼까요?

 

출애굽기 31장 13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안식일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표징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목적은 구원받고 천국 가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안식일 지켜서 영원하고 영원한 천국에 함께 입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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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한 단어가 반드시 한 가지 뜻으로만 해석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한 단어가 두 가지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앞뒤 문맥을 생각하지 않고 한 단어는 오직 한 가지 뜻만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게 되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게 됩니다. 오늘날 하늘 어머니를 부인하는 자들 역시 같은 오류에 빠져있습니다.

 

1. 반대자들의 근거

 

반대자들은 성겨에서 교회(성도)가 그리스도의 아내로 비유된 말씀들만 내세워서 무조건 요한계시록 19장과 22장의 신부(어린양의 아내)도 교회(성도)라고 주장합니다.

반대자들의 내세우는 구절을 살펴볼까요?

 

에베소서 5장 22절~25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 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고린도후서 11장2절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2.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어린양'

 

물론 위 구절들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아내로 비유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한계시록의 신부(어린양의 아내)도 무조건 교회(성도)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예를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어린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봅시다. 다음 구절에서 '어린양' 은 분명히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21장15절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그렇다고 해서 다음 구절의 '어린양'도 그리스도가 아니라 일반 성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여기서 '어린양' 은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다른 구절에서 어린양은 일반 성도들을 의미하므로 이 어린양 곧 예수님도 그리스도가 아니라 일반 성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비록 다른 구절에서는 어린양이 일반 서도들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요한복음 1장 29절의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똑같이 '어린양'으로 표현했지만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아내가 지닌 두 가지 뜻을 아시나요?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표현이 지닌 두 가지 의미는 그리스도의 아내를 표상하는 '하와'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후에 오실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합니다(롬 5장 14절). 그렇다면 그 아내 하와는 누구를 표상할까요? 당연히 그리스도의 아내를 표상합니다.

그런데 하와는 1차적으로는 성도들을 , 2차적으로는 6천 년 끝에 성도들을 인도하고 생명수를 주시기 위하여 구원자로 등장하실 신부(하늘 어머니)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즉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아내'를 표상하는 하와가 '성도들과 하늘 어머니'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아내' 도 당연히 '성도들과 하늘 어머니' 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어린양의 아내'

 

그리스도의 아내가 지닌 두 가지 뜻을 아시나요?

 

'어린양의 아내'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아내'로 표현되었지만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분명히 다릅니다. 저들이 내세우는 구절들에서는 그리스도의 아내가 교회(성도)를 뜻한다고 할지라도 천국 혼인 잔치에서 생명수를 주시는 어린양의 아내는 오직 하늘 어머니만을 가리킵니다(계 19:7, 21: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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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홍님과 멜기세덱의 오묘한 비밀


안상홍 재림 그리스도의 발자취

안상홍(Ahn-Sahng Hong)님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는 성경의 기록대로 1918년 이 땅에 사람 되어 임하셨다(히브리서 9:28). 예언에 따라 다윗의 위(位)에 앉으신 안상홍님께서는 1948년 30세가 되시는 해에 침례를 받으시고, 1964년에 초대교회의 원형인 하나님의 교회(World Mission Society Church of God)를 재건하시어 복음의 문을 여셨다. 2018년은 안상홍님께서 성탄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안상홍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처음 하신 일은 ‘새 언약 유월절 진리’를 회복하신 것이었다. 새 언약 유월절은 성경에 수없이 기록된 진리다. 3500년 전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해방될 때도,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출애굽기 12:11~14, 마태복음 26:19~28). 공교롭게도 새 언약 유월절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이후 1600년 동안 종교개혁자들을 비롯하여 성경학자들과 내로라하는 신학박사들이 성경을 수없이 연구하고 통독했지만 이를 되찾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새 언약 유월절 진리는 오직 ‘하나님’만 개봉해주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25:6~9).


안상홍님께서 새 언약의 진리를 처음 개봉하시고 강조하셨다는 사실은, 저서인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최후의 재앙과 하나님의 인」,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상홍님과 멜기세덱의 관계


안상홍님은 멜기세덱의 실체로 오신 재림 그리스도다. 멜기세덱만이 가져올 수 있는 진리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이에 얽힌 비밀을 신·구약 성경을 통해 확인해보자.

 

멜기세덱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7~20)]


멜기세덱(Melchizedek)은 주전 1920년경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처음 성경에 등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주었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주목할 점은 멜기세덱이 행한 이례적인 제사 방법이다. 당시 제사장들은 누군가에게 복을 빌어주거나 언약을 세울 때 양이나 염소 등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라는 특이한 제물을 사용하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떡과 포도주는 멜기세덱의 특징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멜기세덱의 실체

구약은 그림자고 신약은 실체다(히브리서 8:5). 구약에서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준 역사가 있었다면, 실물인 신약 때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타나야 한다.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잔(포도주)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9~20)]


이천 년 전, 수많은 제사장들이 제사의 직분을 행할 때 짐승을 희생제물로 사용한 반면, 예수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셨다. 유월절 떡을 당신의 살로,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언약하시며 제자들에게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약속하셨다(마태복음 26:19~28). 구약 멜기세덱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멜기세덱의 제사 직분을 잇는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증거했다(히브리서 5:5~6).

 

안상홍님이 멜기세덱인 이유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은 멜기세덱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설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예수님께서 분명 멜기세덱의 실체로 오셨으나,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해하기에는 몇 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히브리서 5:11)]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과 멜기세덱에 관한 어떤 부분이 해석하기 힘든 것일까?

 

족보에 대한 문제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족보도 없고 (히브리서 7:1~3)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족보란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족보를 가리킨다. 즉 이스라엘 12지파에 족보가 실려 있지 않는 이방 사람이어야 완전한 멜기세덱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유다지파에 족보가 있으신 분이었고, 이는 사도들이 기록한 복음서의 서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마태복음 1:1~16). 이러한 부분이 멜기세덱을 초림 예수님으로 단정짓는 데 어려운 부분이었던 것이다.

 

아비와 어미가 없다는 문제


멜기세덱은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히브리서 7:1~3)

멜기세덱의 또 다른 특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이는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부모나 형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마태복음 12:46~50). 즉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는 것은 멜기세덱이 불신자 밑에서 출생한 이방이어야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초림 예수님의 경우 요셉과 마리아 모두 하나님을 믿었던 자들이다.

 

 

멜기세덱의 증표, 떡과 포도주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로 복을 빌어주는 제사장이다. 옛적 수많은 제사장들 가운데 떡과 포도주로 복을 빈 사람은 오직 멜기세덱뿐이었으며, 신약시대에도 떡과 포도주로 영생의 축복을 빌어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다. 오늘날 1600여 년 동안 사라졌던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되찾아주셔서 인류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분이 있다. 바로 안상홍님이시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이사야 선지자는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유월절을 개봉하시어 인류의 죗값 즉 사망죄를 멸하신 안상홍님을 가리켜 구원자라 증거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이사야 25:6~9)


안상홍님은 멜기세덱의 실체로서 구원의 핵심인 유월절을 가지고 오셨다. 성경은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던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로 인류에게 복을 빌어주신 분을 ‘하나님’이라 설명하고 있다. 백성들은 그분을 향해 “바로 이분이 하나님이시다. 구원해 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던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증거하며 기뻐하고 있다. 이 예언이 오늘날 우리에게 응했다. 곧 안상홍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이 바로 구원에 들어갈 자들인 것이다.

출처:패스티브https://paste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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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예수님께서 피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기독교인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시며 유월절을 새 언약으로 제정해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유월절이 폐지된 때는 주후 325년입니다. 교회사 및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획을 그은 니케아 회의는 콘스탄디누스 황제의 주재로 소집되었으며 당시로서는 처음 있는 세계적 종교회의였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새 언약 유월절이 폐지된 325년 니케아 회의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초대교회의 진리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성력 1월 14일 저녁, 목요일)에 성만찬을 하시고, 다음 날인 무교절(성력 1월 15일,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교절 다음에 오는 안식 후 첫날(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즉 부활절은 무교절 후 첫 이요일로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기 전에 지키셨던 유월절과는 완전히 다른 날입니다.(눅22:15)

따라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언에 따라 성력 1월 14일 저녁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였고(고전 5:7, 11:23~26), 다음날인 15일에는 무교절을 지켜 금식하였으며(막 2:19~20), 무교절 후 첫 일요일에는 떡을 떼며 부활절을 지켰습니다.(행 20:6~7, 눅 24:30~31)

 

로마교회의 변질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세계의 수도 로마에 위치한 로마교회의 주장이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노예 등 하층민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로마교회에 점차 중류층이 입교하고 나중에는 귀족들까지 입교하게 되자 인근 교회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떠나 곁길로 나가기 시작하여 유월절에 성찬식 하는 것을 거부하고 유월절 다음의 일요일 (부활절)에 성찬식을 하였습니다. 성찬식은 원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고전 1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회는 서로 다른 절기인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 절기로 합쳐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성찬식을 거행하는 풍습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제1차 유월절 논쟁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의 새로운 전통은 예수님 때로부터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성찬식을 행해오던 동방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55년경에는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캐스터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건 폴리캅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폴리캅은 이 논쟁에서, 자신이 여러 사도들과 함께 매년 유월절 곧 성력 1월(닛산) 14일을 지켜왔다고 하며, 유월절에 성찬식을 하는 것이 예수님 때로부터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양편은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제2차 유월절 논쟁

 

이후 197년경, 유월절 논쟁은 다시 촉발되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 감독(오늘날의 교황)이었던 빅터는 유월절(성력 1월 14일 저녁)이 아니라 유월절 다음의 첫 일요일(부활절)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도미닉의 규칙(주의 규칙)'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교회에 강요하여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닛산 14일에 성찬식을 행하셨음에도 ㅂㄹ구하고 빅터는 그 후에 오는 일요일에 성찬식을 행하는 로마의 관습이 에수님의 규칙이라고 우겼던 것입니다.

 

이에 서방 교회들은 로마교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으나 사도시대로부터 유월절 성만찬을 성력 1월 14일에 기념해 온 아시아 교회들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에베소 감독 폴리 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 아시아 교회들을 지도했던 사도 빌립, 사도 요한, 그리고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음을 말하고,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승을 따라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며, 유월절을 지켜야 함을 강한 어조로 설명하였습니다. 이에 빅터는 아시아 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 하였지만,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만류로 파문 조치를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니케아 회의에서 유월절 폐지

 

아니케스터, 빅터 등 로마 교황들이 계속해서 유월절을 없애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쟁의 불씨는 4세기에 다시 점화되었고, 사단은 결국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재한 니케아 회의를 통해 생명의 진리를 없애버렸습니다. 325년 니케아 지방에서 열린 이 종교회의에서는 오랫동안 유월절을 없애기를 원했던 로마교회의 주장대로 유월절을 폐지하고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날짜는 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는 성경적 기준을 없애고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려고 하다 보니, 성경에 없는 '춘분 후 만월'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그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한 것입니다.

 

이후 로마교회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들은 이단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당했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사막이나 산중, 동굴에 숨어서 유월절을 지켜야 했습니다(교회사 초대편 283쪽 참조).

이렇게 새 언약 유월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예언대로 사단이 하나님의 때와 법을 바꾸고 일시적인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단 7장 25절).

 

이렇게 역사는 유월절이 폐지된 사건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성경의 유월절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유월절을 회복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예언에 따라 이 시대 유월절을 회복해 주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은 안상홍님이십니다.

유월절을 제대로 알고 지켰을 때 무교절 또 다가오는 부활절까지 성경대로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의 모든 3차 7개 절기를 알려주시고 지킬 수 있게 해 주신 엘로힘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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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수를 주시는 하늘 어머니에 대한 구약의 예언

 

구약성경에도 생명수를 주시는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에 대한 예언들이 있습니다.

 

스가랴 14장8절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육적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 등장하실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이십니다.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여름에도 겨울에도 사시사철 쉬지 않고 내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의 위력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에스겔 47장1~2절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온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의 실체이신 하늘 어머니께서 주실 생명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말씀도 스가랴서와 같이 마지막 때 생명수가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에게서 나올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에스겔 47장 3~5절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니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리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던 생명수가 멀리 흘러갈수록 무릎까지 허리까지 차 올랐습니다. 나중에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이는 생명수가 흐를수록 점점 더 강성해질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예언대로 이루어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늘 어머니께서 이루시는 복음역사가 처음에는 작게 시작되었으나 마침내는 전국으로 전 세게로 전파되면서 점점 더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전 세계를 송성시킬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겔 47장 8~9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으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흘러내리는 곳마다 무슨 일이 생깁니까? 바다가 소성함을 입고 모든 생물이 살게 됩니다.

바다는 전 세계 인류를 표상합니다(계17:15)

어머니의 생명수는 죽어 있는 전 세계를 살릴 수 있는 놀라운 권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놀라운 생명수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에스겔 47장 11절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진펄과 개펄은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예언이비다.

이들은 소성되지 못한 상태로 버림받아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소금 땅이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진펄과 개펄 같은 자들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늘 어머니를 절대적으로 믿고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생명수의 강가에는 달마다 실과를 맺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는 나무가 있습니다.

 

에스겔 47장12절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그 잎사귀는 어떤 효력을 지닌 약 재료이겠습니까? 

생명수로 자라난 잎사귀이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치료하여 생명을 줄 수 있는 약효가 있을 것입니다

 

생명수를 받은 사람들이 누릴 영광

 

에스겔서와 동일한 예언이 요한계시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1~2절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주실 생명수에 대한 에언입니다.생명수가 흘러나오는 보좌는 예루살렘입니다(렘3:17).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여기서도 생명수의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달마다 열두 가지 실과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생명수를 받은 자들은 어떤 영광을 누리게 될까요?

 

요한계시록 22장5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여기서 '저희'는 누구입니까?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우리에 대한 에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생명수를 받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라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축복은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성도들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생명수를 받지 못하면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천국의 영광과 축복도 얻을 수 없습니다.

생명수 주시는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 영접하여 이 모든 영광을 누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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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입니다. 물이 없으면 모든 생물이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예를 들어 살펴볼까요~

사람의 신체는 70%가 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물이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고12%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는다고 합니다. 이로 보건대 물은 생명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육적 생명을 위해서도 물이 필요하듯 영적 생명을 위해서도 생명수가 꼭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실 수 있는 분이 누구신지 성경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올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누가 생명수를 주신다구요~

성령과 신부께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과 신부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만 생명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성령은 성삼위 일체로 볼 때 하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생명수를 주신다고 에언된 신부는 누구일까요?

이 신부에 대해 알아봐야 하겠죠~

 

요한계시록 21장9절~10절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천사가 신부를 보여주겠다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신부=예루살렘

 

하늘 예루살렘과 우리는 어떤 관계일까요?

 

갈라디아서 4장26절

오직 위에 있는 에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라 하셨습니다.

바로 성령과 함께 생명수를 주실 신부는 우리의 하늘 어머니이십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는 성령이신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께서 등장하셔서 생명수를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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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교회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도 안식일을 규례로 지켰습니다. 즉 토요일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이는 2세기경에 로마교회(천주교)가 로마 태양신교의 성일인 일요일을 예배일로 받아들였으며, 주후 321년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Sunday)에 쉬게 하는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로마 태양신교 즉 미트라교의 성일이던 일요일이 기독교의 예배일로 바뀌게 된 과정을 살펴볼까요?

 

미트라교의 성일이 일요일

 

로마인들에게 핍박을 받았던 초기 기독교와는 반대로 당시 로마인들에게 환영을 받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종교였습니다.

미트라는 페르시아의 조로 아스터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에 들어왔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 전파되었을 무렵에 미트라교가 로마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였습니다.

태양신 미트라는 '정복 불가능한 신' 또는 '불멸의 젊은 신'으로 묘사되어 주로 군인증에서 열렬히 신봉되었고 이후 귀족과 황실에 받아들여져 제국과 황제의 수호신으로 격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 태양신교 즉 미트라교의 성일이 바로 일요일(Sunday)이었습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제14권],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문사,1988,116쪽

3 이교종교들에서 일요일의 우월성 : 기독교시대 초기에 로마제국에서, 특히 로마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던 동방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페르시아로부터 수입되었던 미드라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의 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드라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일요일 예배를 주장한 로마교회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은 유대교를 싫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형상들을 만들어 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로마인들의 관점에서는 형상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분 하나님만을 믿는 유대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더 나아가 유대인들은 신앙을 이유로 로마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유대인이라는 소수 민족에 국한된 종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상관없이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기독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에게도 미움을 받아 결국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의 갈등이 심화되어 두 차례의 유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두 차례나 반란을 일으킨 셈이어서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정책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또한 유일신 신앙이었고 유대교의 안식일과 기독교의 안식일은 동일한 일곱째 날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향한 박해 역시 가중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새 언약의 안식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로마교회의 신자들은 박해의 요인을 줄이기 위해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로마인들에게 인식시키려고 하였고 2세기부터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기독교를 핍박해온 유대교의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진 신자들이 쉽게 호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하는 로마인들의 환심을 얻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세기경에 미트라교의 태양 숭배 일이 로마교회의 예배일로 둔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무시하고 사람의 의견을 더했던 것입니다.

 

일요일 휴업령 이전에 안식일을 지킨 역사

 

2세기경에 모든 교회가 일요일 예배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미트라교의 태양신 숭배 일을 2세기부터 예배일로 받아들였지만 동방교회들은 321년에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질 때까지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교회사], 송낙원 저, 이건사, 198,101쪽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

예배의 시기로는 주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

 

[교회사], 김의환 감수, 세종문화사, 1992, 145쪽

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일요일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

 

콘스탄티누스의 정책과 일요일 휴업령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으로 기독교는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고, 점차 기독교를 옹호하는 정책을 펼쳐나갔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우대했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는 로마 종교게의 최고 제사장 직위를 소유했으며, 그가 가장 좋아했던 불멸의 태양신 미트라와 그리스도를 동일한 신으로 이해했습니다.

또한 그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제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종교로 기독교를 택했습니다.

[교회사 핸드북], 라이온사 편, 송광택 역, 생명의 말씀사, 1991, 130-131쪽

콘스탄틴은 폰티펙스 막시무스(tifex Maximus-로마 종교게의 최고위직)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10년 동안 그의 화폐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신 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

 

[교회사(초대편)], J.W.C 완드 저,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92쪽

콘스탄틴은 다스려 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인을 지지하였고,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세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우리가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1년에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는 법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교회사 핸드북], 라이온사 편, 송광택 역, 생명의 말씀사, 1991,144쪽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 ... 주후 321년 3월 7일."-콘스탄틴의 칙령

 

황제의 칙령 속에 나타난 '존엄한 태양의 날' 이라는 표현을 볼 때, 일요일 휴업령은 로마의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미트라 교도들을 배려한 칙령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신성시하는 기존의 태양신교와, 일찍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던 서방 교회를 통합하는 묘책으로 일요일 휴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요일을 성일로 여기던 미트라 교인들도 이 칙령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일요일 휴일 제도와 일요일 예배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교회사(초대편)], J.W.C 완드 저, 이장식 역, 대한기도교서회, 2000, 193쪽

"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영어 원문에는 '참된 경일' 이 아니라 라틴어로 'dies venerabilis solis(존엄한 태양의 날)' 이라고 기록되어있음

 

일요일 휴업령은 로마교회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321년 이전까지는 로마교회와 그 영향력 아래 있었던 일부 교회들만이 일요일을 지켰지만, 321년에 선포된 일요일 휴업령은 황제의 권위로 제국의 모든 신민이 일요일에 쉬도록 강제함으로써 안식일을 준수해오던 동방의 교회들까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하게 하였습니다.

과거 황제들의 기독교 박해가 기독교를 더욱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우대 정책은 오히려 기독교를 이방 종교와 혼합하여 변질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경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태양신교의 성일이었던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https://youtu.be/7AlKFAHWZ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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